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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몸을 찾아서
작성일자 2019-05-14
조회수 3686
카테고리 수련체험
몸을 찾아서

백남귀

  텔레비전이나 영화, 컴퓨터 게임에 빠져있는 사람들에게 "요즘 어떤 의미ᄅ 사느냐?"하는 질문을 한다면 아마 "별 우스운 사람 다 보겠네"할지 모르겠다. 이 세상은 어떤 의미로 따지지 않더라도 재미있는 일을 얼마든지 찾아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감각적 이미지의 자극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그 어떤 것이라도 큰 것이든 작은 것이든 의미를 따진다는 것에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어쩌면 따지는 그 순간이 무의미한 것이라 할 사람도 있을 것 같다. 그럴 시간에 조금 더 자극적이고 감각적인 재미를 만들어가는 것이 창조적이고 새로운 의미의 삶이라고 말할 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급류에 휘말려 살면서도 그 급류의 속도에 쾌감을 느끼고 있는 듯하다. 하와이 해변에서 파도타기를 하는 사람들 중에 프로급들은 단순히 파도 타는 재미만 만끽하려 하지 않는다. 더 무섭고 높은 파도에 도전하고 싶어하고 그런 파도가 오는 시기에는 생명을 걸고라도 파도와 싸움을 한다. 죽음을 넘나드는 곡예의 쾌감을 맛보려는 듯 더 험하고 성난 파도를 기다리며 목숨을 건 한판 승부를 건다. 물론 이러한 장면을 볼 때면 자연의 힘을 스포츠라는 내용으로 이겨보려는 사람들의 근성과 무한한 도전 정신, 불굴의 의지, 끊임없는 기술 연마 등이 느껴진다. 그리고 최고의 스릴감에 모든 것을 거는 인간의 모습에서 간접적인 긴장감과 통쾌함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언젠가 사람들은 자신들의 한계가 무엇인지를 깨닫는 순간이 올 것이다. 한없이 도전하고 스릴을 맛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아무튼 사람들이 점점 속도전에서 스릴감을 쟁취하고 싶어하고 감각적인 힘에 의지하여 생명을 갖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느끼고 싶어하는 것 같다. 그러나 사람은 자연과 동떨어진 존재가 아니다. 서로 조금씩 다른 기운, 다른 조건, 다른 역할을 갖고 있는 존재인 것만은 사실이지만 자연에 도전하는 사람 역시 자연의 일부라고 말하고 싶다. 자연은 기에 의해 움직여지고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에게 갑자기 ‘기(氣)’에 대해 말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이 감각적이든 자극적이든 간에 기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고 말하면 나를 별난 사람 취급한다. 어쩌면 ‘기’를 신비체험의 세계로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현재 내 모습을 유지시켜 주고 있는 힘. 만들어 설명하기 힘든 궁극의 에너지, 숨겨진 속생명이 ‘기’라고 설명하면서 생명력이 곧 ‘기’이고 삶을 창조적으로 이끌어 가는 뿌리가 ‘기’임을 강조한다면 어떤 반응들이 나타날까? 자못 궁금하다. 어쩌면 나를 길거리 표 개똥철학자로 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번은 이 재미없고 따분한 얘기를 해야겠다.
  수년 간 부처님 말씀을 공부하고, 수년 간 도심에서 오후 불식하며 용맹정진하고, 수년 간 부처님 말씀을 전하면서 나름대로 열심히 산다고 살았던 탓인가 슬그머니 몸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삐걱대기 시작했다. 안압이 올라가면서 눈이 흐릿해지고 정신이 몽롱해지는 날이 많았다. 결국 병원에서 더 이상 책을 보면 실명할 수도 있다는 진단을 받아야 했다. 실명할 위기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책도 볼 수 없고, 내가 쓴 원고 교정도 볼 수 없었으며, 동분서주하게 돌아다닐 수도 없었다.
  그 동안 해왔던 일들이 내 눈 하나 때문에 멈춘 듯 했다. 마치 소설의 어느 부분을 읽다가 잠이 든 것처럼, 마법에 걸린 어느 동화의 성(城)처럼 그렇게 모든 것이 멈춘 듯 느껴졌다. 그런 와중에도 피로를 풀고 건강을 되찾아 보자는 생각에 나름대로 하루에 몇 시간씩 열심히 운동을 했다. 그러나 역부족이었다.
  간염에 걸린 상태라서 운동으로는 피곤을 풀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병들고 있는 간은 나의 표정까지도 바꾸고 있었다. 해맑아야 할 수행자의 표정이 점점 무거워지고, 얼굴빛도 조금씩 어두워졌다. 주변에서 안색이 좋지 않다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몸보다 마음에 더 많은 병이 깊어지는 듯 했다. 그렇게 몸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자 밤에는 공부하면서 글을 쓰고, 낮에는 불자들과 함께 교도소와 병원을 돌아다니며 포교하던 나로서는 무엇엔가 발목이 꽉 잡힌 듯 하고 눈앞이 막막해졌다. 그렇다고 무리한 탓에 병들어 버린 몸을 탓할 수도 없고, 나만 믿고 봉사활동을 함께 해오던 분들에게 쉬고 싶다는 말을 할 수도 없고……
  그저 혼자만 하루하루를 긴장하고 그 긴장감을 기도로 풀어갈 뿐이었다. 그러던 중 바삐 움직이던 기질 때문인지 내 마음을 스스로 켰다 껐다 할 수 있는 공부를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처님의 일을 하면서 스스로 몸을 하나 다스리지 못한다면 종교인으로써 누구의 영혼도 밝혀 줄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수행의 일환으로 선택한 것이 대학원 진학이었고, 어떤 학문을 공부할까 하는 고민에서 만난 것이 기공학이었다.
  완전한 평안 속에 깃드시어 중생들을 그 평온의 길에 오르게 하고자 하셨던 부처님처럼 삶의 근원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기’를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사실 기공 학이라는 것이 학문으로써 연구되고 이론적인 체계가 자리 잡힌 것은 근래의 일이다.
  철학의 근저를 이루는 학문이면서도 이론적인 체계보다는 오랜 수련을 통해 스스로 체험으로 얻어내는 것이 더 중요했던 분야다. 이를 대학원에서 어떻게 경험하게 될 것인가 자못 기대 반 염려 반이었다. 그러나 자연의 이치대로 만물이 움직이듯이 내 몸과 마음이 기공 학을 공부하는 것도 자연적이었다. 무엇을 배워야 한다는 압박감도, 꼭 알아야 한다는 부담감도 없었다. 내 몸을 찾아서 허공의 빛을 깨달아야 한다는 의식 때문인지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이고 마음에 새겨졌다. 학우들, 문우들과 함께 틈틈이 갈팡질팡 흐트러지고 몽롱한 정신이 스며들고 있는 몸을 제대로 찾아야겠다는 목적 아래 수련을 했다.
  특히 국선도 사범연수과정에서 육조법(六調法 : 身․息․心․食․理․精)에 대한 강의는 유익한 점이 많았다. 국선도를 통해 내 몸의 상태를 관찰하고, 조절하고, 강화시켜 나갈 수 있었는데 육조법 중에 조신법에 대한 전반적인 강의를 듣고 나니 나처럼 몸을 스스로 다스려 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조금 더 설득력 있게 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수천 년 전부터 내려오는 조상들의 수련법은 오늘날 내 몸을 바꾸어 주었다. 눈이 다시 밝아지고, 간염이 정지된 상태여서 병원에서도 의아해할 정도다. 호흡이 길어지면서 순환기 계통도 좋아지면서 신경계도 좋아졌는지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좌골신경통도 사라지고 피부가 맑아져, 보는 사람들마다 인사를 한다. 선조들이 오랜 세월동안 쌓은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만들어낸 수련과정이 내 몸에서 최대의 효과를 발휘함을 스스로 한껏 체험한 것이다.
  이로 인하여 인체는 자연의 법칙과 밀접한 관계가 있고, 우주의 운행법칙에 따라 움직이고 있음을 체험하면서 스스로 몸의 중심을 충실히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혹자들은 출가 수행자들이 육신을 소중히 하는 것은 육신에 대한 집착을 끊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하여 수행자답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그렇지 않다.
  출가수행자들이 육신을 소중히 하는 것은 육신이 소중해서가 아니라 육신이 문제를 일으키면 수행을 계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몸에 상처가 나면 상체에 연고를 바르고 붕대로 감싸준다. 그것은 상처가 소중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상처를 잘 치료하기 위한 것과 같다. 즉, 출가수행자가 몸을 보호하는 것은 육신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맑고 깨끗한 수행을 위한 육신 유지라 할 수 있다.
  이는 재가 수행자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몸을 소홀히 하다보면 좋은 수행을 하기 어렵다. 따라서 수행을 위해 자신의 몸을 찾는 수련을 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바르고 맑고 원할한 몸을 되찾기 위해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골고루 부드럽게 풀어주고, 다시 단전호흡을 통해 축기된 기를 몸 전신에 유통시켜주는 수련을 우선적으로 권하고 싶다.
  이 수련이 기초가 되어 단전행공을 해 나간다면 스스로 몸을 촉진시켜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수련은 특히 미래를 미리 걱정하는 사람에게 권하고 싶다.
  내가 만약 이렇게 된다면, 저렇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걱정을 끊임없이 하는 사람, 혹은 어떠한 경험하기를 두려워하는 사람, 만사가 귀찮아 미래에 대한 준비를 하기를 꺼려하는 사람들이 육조법을 통해 자신의 몸을 되찾고 영혼을 맑고 활력있게 만들어 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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