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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쏟아져 내리는 이 축복
작성일자 2019-05-14
조회수 3594
카테고리 수련체험
쏟아져 내리는 이 축복

서광자

- 단전호흡 그게 뭘까?

  그 날도 나는 노인정 봉사를 다녀오는 길에 구청에 들러 홍보용 좌대에서 습관처럼 신문을 빼어 보다가 단전호흡 광고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단전호흡이 뭔지 전혀 몰랐으며 ‘호흡’이란 말이 들어간 걸 보니 숨을 잘 쉬게 하는 그런 운동인가보다 생각하며 첫 수련을 시작한 날이 잊혀지지도 않는 97년 6월 2일이었습니다.
  어색한대로 구령에 따라 머리의 정수리를 누르고 차례차례 얼굴의 혈들을 누르며 목 뒤까지 눌러주고, 머리를 툭툭치는 동작을 할 때 저는 마음 속으로 놀라움이 컸습니다. 지금 무심히 눌러주는 그 자리들은 몇 년이나 한방의료원 문턱이 닳도록 다니며 침을 맞던 자리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퇴근한 남편이 늘 지압을 해주었는데 (그때는 안면마비 후유증에 시달릴 때라 보기에 딱한 남편이 지압을 배워 옴) 특히 목 뒤(아문혈)를 누를 땐 눈이 빠질 듯한 통증을 참아야 했고 어깨, 목, 머리, 이마까지 30분 정도의 지압이 끝나면 뿌옇게 보이던 TV화면이 거짓말처럼 너무나 깨끗하게 보였으며 머리가 쪼개지는 듯한 두통이 씻은 듯이 사라지는 경험을 늘 했던 터라 ‘이건 그냥 운동이 아니라 뭔가 대단한 것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으며 내겐 꼭 필요한 운동인 것 같아 그 날부터 단전호흡에 몰두하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눈을 감고도 호흡의 간격을 맞추기 위해 초침시계를 앞에 놓고 연습을 했고 (CD가 있는 줄 몰랐음) 혈자리 하나를 눌러도 가장 정확하게 제자리를 누르려고 애썼으며 동작 하나도 제대로 배우려 사범님께, 선배님께 물었습니다.
  행공도를 받으면 복사를 해서 화장실에도 책상 앞에도 붙여놓고 외우고, 길을 걸으면서도 전철 안에서도 꺼내 외우려고 애를 썼습니다만 15가지 동작이 승단할 때까지도 외워지지 않아 법사님께 주의를 들었습니다. ‘언제까지 행공도를 앞에 놓고 할 것이며 수건은 언제까지 머리에 대고 할 것이냐’고 이렇게 말입니다(두좌법을 할 땐 당연히 수건을 두껍게 접어 머리에 대고 하는 것으로 알았음). 그 후부터 절대 수건을 갖고 다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땐 그렇게 노력을 해도 기억력이 잘 살아 나지 않았고 몸의 기능이 제대로 돌아가질 않아 눈으로 보고하는 단순한 동작은 되지만 머리를 쓰고 기억하는 일은 정말 어려웠습니다. 조신법에서 양손바닥, 엄지손가락, 손등, 새끼손가락을 마주 대고 팔을 뒤로 벌리는 동작이 있는데 왜 같은 동작을 네 번이나 되풀이하는가 싶어 거울을 보며 하나하나 되풀이 해보니 어깨 관절의 당김이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행공도 하나하나가 언뜻 보면 비슷하니 지루한 듯 하지만 전후 좌우 모든 움직임이 우리 몸 어느 한곳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가 어릴 때 보면 이불 홑청에 풀을 빳빳이 매겨 네 모서리를 마주잡고 골고루 당겨주고 밟아 주어야 주름이 펴지듯이 우리 몸도 전후좌우로 고르게 풀어 주어야 기의 유통이 원활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장 멋있게 보였던 것은 사범님의 두좌법인데 얼마나 멋있고 신기해 보였는지 “내 목표는 두좌법이다” 했더니 같이 간 친구가 “꿈깨라 꿈깨!” 그게 아무나 되는지 아느냐고 핀잔을 주기도 했습니다. 3개월이 되어갈 무렵 발이 쓱 올라가며 두좌법이 되어 기쁜 나머지 오히려 얼떨떨한 기분이었습니다.
  매일 되풀이하는 국선도 수련인데도 재미가 있었고 하루가 다르게 감지되는 몸의 변화는 제게 희망을 주었으며 제 생활의 최우선 순위는 단전교실에 나가는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 머리 위에 쏟아지는 축복과 감사

  우리 단전교실은 서초구청 대강당인데 냉난방이 사계절 완벽하게 되어있고 창 너머로 보이는 우면산 자락의 푸르름과 오전의 맑은 햇살은 수련을 하는데 도움을 주었으며 수련을 시작하는 어느 하루도 단전교실을 열어주신 구청장님께 감사의 마음을 잊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관심과 배려를 해 주시는지 고마움과 감사의 마음은 제 몸이 회복되어 갈수록 더해만 갔습니다.
  제가 처음 수련을 시작할 때만해도 마비 증상의 후유증이 심해 몸을 틀지 않고는 옆을 볼 수도 없었고 겨울만 오면 한쪽 얼굴이 뻣뻣하고 눈을 뜰 수 없었으며 (바람이 눈으로 들어오는 것 같아서) 소리의 변별, 맛의 감각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건강이 호전되어 갔으며 특히 용천혈을 누를 땐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뭔가 확 뚫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으며 손발이 차차 더워져 갔습니다. 몇 년의 겨울 동안 문밖 출입을 못했지만 그 해 겨울은 하루도 빠짐없이 수련을 할 수 있는 기적과 같은 이변이 일어났습니다. 흡사 죽어있는 세포가 푸득푸득 일어서는 듯한 경이로움에 감사와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단전교실에 나가서도 작은 일이라도 회원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찾게 되었고 사범님께나 구청에 대해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내다 보니 회원들간에 정도 두터워지고 특히 선배 형님들과 손위 형님들의 지극한 사랑과 좋은 유대관계가 저의 건강을 많이 도왔다고 생각합니다.
  지난날의 그 처절했던 절망과 고통을 벗어나 날개를 단 것 같은 체력으로 신들린 사람처럼 자원봉사 일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병신보고 웃지 말라던 옛말을 상기하며 장애 쪽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봉사는 하면 할수록 내 자신이 누리고 있는 많은 것들에 감사함을 느끼게 됩니다. 걸어 다닐 수 있는 것, 숨쉬는 것 무엇하나 감사하지 않은 것이 없으니까요.
  매일 아침 구청을 향해 걷는 30여분의 시간들은 머리 위에서 축복이 쏟아져 내리는 것 같았으며 마음은 늘 기쁨으로 가득했기에 만나는 사람마다 단전호흡의 신비로움을 얘기하며 저의 하루의 모든 생활은 충만하고 행복했습니다.

- 눈물의 하반기

  제가 단전호흡을 하면서 많은 것을 체험하게 되었고, 차제에 저 나름대로의 계획을 세워 좀더 많은 것을 배우고 싶어 사범반 등록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도 토요일 오전엔 정신 지체아 수영봉사를 하던 중이라 저녁반에서 교육을 받게 되어 아주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도 시아버님이 장암으로 수술을 하셨고 예후가 좋지 않아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건망증인줄 알았던 시어머님이 치매증세를 보이기 시작하여 집안의 모든 질서가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전혀 상상치 못한 행동과 일들이 벌어지며 한시도 어머니에게서 눈을 뗄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눈물과 절망 속에 치매 상담소를 찾게 되었고 그곳에서 다른 치매 가족들의 더 고달프고 가슴 아픈 이야기를 들으며 위로도 받고 상담소의 도움도 받게 되었습니다. ‘이제 겨우 시작한 사범반 교육을 어떻게 할까?’ 고민도 많았고 너무나 심신이 지쳐서 주저앉을 것만 같았습니다.
  어머니가 주무시는 사이 우리 동네에 새로 개설된 단전교실에 나가 그곳 사범님의 도움으로 오공법을 조금씩 배웠으나 어머님 걱정에 마음이 급해 집으로 뛰어오면 집은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습니다. 모든 물건은 뒤죽박죽 제자리에 있는 것이 없었으며 화초는 뽑혀져 흙 따로 화초 따로 도저히 말로는 설명이 안됩니다. 얼마나 점잖은 어른이셨는데 막막하고 기막힌 이런 일을 두고 억장이 무너진다고 하던가요?
  이 와중에 가을이 오며 첫 손주가 태어났습니다. 사람을 구하려해도 쉽지 않았으며 다행히 목사님 소개로 그룹 홈을 운영하는 신앙이 좋은 분을 만나게 되어 어머님을 그곳으로 모시게 되고 애기를 봐주기 위해 상도동과 서초동의 중간 지점인 방배4동 단전교실에 나가게 된 것이 10월 중순입니다. 그 동안 받아온 교재는 한번 읽어보지도 못한 채 쌓여있고 오공법, 오기법, 기신법 모든 진도가 한참 나간 뒤였습니다. 호흡도 체대로 안될 뿐 아니라 몸은 지치고 마음은 초조해져 ‘사범반을 쉬고 다음에 다시 해봐?’하는 생각도 여러 번 해 봤으나 ‘낙제를 하면 재수를 하는 한이 있더라도 하는데까지 해보자’ 이렇게 마음을 굳히니 그때부터 마음이 편안해지며 여유까지 생겼습니다.
  그러나 서초동에서 상도동으로 다니며 애기를 봐야 하고 새벽 4시~4시 30분에는 일어나야 지하철 첫차를 탈 수 있는데, 밤낮을 구별 못하는 애기가 5개월이 될 때까지 밤을 꼬박 세워야 하는 날이 잦았고 새벽 5시까지 애기와 씨름하는 날이면 일어나기가 쉽지 않았고, 특히 한겨울 새벽바람에 운동을 나갈 땐 너무 졸려서 걸음이 나가지가 않았습니다. 그야말로 비몽사몽이라고나 할까요.
  그래도 직장에 나가는 딸을 깨우기보다는 내가 밤을 새우는 것이 낫고 남의 손에 애기를 맡기기보다는 내 손으로 키우는 것이 백 번 잘했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제는 애기도 6개월이 되니 잠도 잘 자고 잘 크는 애기의 모습과 웃음에 저는 너무 행복합니다.
  그리고 눈물로 얼룩지던 그 어려운 때에 저를 도와 주셨던 서초4동의 윤사범님께 고마움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방배4동 사범님의 깊은 배려와 지도에 정말 감사드리며, 지금 사범반에 같이 들어간 회장님, 회원분들의 따뜻한 마음 씀씀이는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감사합니다. 만약 제가 낙제를 면하여 사범반을 마칠 수 있다면 오로지 그분들의 덕분이라 생각합니다.

- 사모님 춤 배우세요?

  저는 국선도 수련을 하면서 제 인생이 얼마나 많은 변화와 얼마나 많은 분들의 사랑과 도움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수련 과정에서도 원기단법 후편으로 갈수록 점점 어려운 동작들을 만날 때마다 이 어려운 관문을 통과하지 않고는 새로운 미지의 세계를 만날 수 없기에 열심히 노력하고 있으며 배우면 배울수록 재미를 느낍니다.
  오공법을 익히기 위해 애기를 업고 연습을 해야 했고 그 날 배운 동작들을 메모를 하여 오고 가는 차안에서 외우려 애썼습니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아무도 없는 줄 알고 오공법을 익히느라 조심조심 발동작을 해봤는데 구두수선 아저씨가 봤을 줄이야!
  한번은 구두 수선을 하러 갔는데 열심히 구두를 고치던 아저씨가 “사모님 춤 배우세요?” 느닷없이 묻는 말에 “춤은 무슨 춤이요?”했더니 “늘 같은 시간에 버스를 기다리며 스텝을 밟는 거 같아서요” 라고 얘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제야 나는 오공법에 몰두해서 그런 오해를 받았구나 생각하며 그간의 얘기를 대충하며 아저씨도 시간이 나시거든 꼭 단전호흡을 배워 보라고 권유를 했습니다.
  이제 사범반을 마칠 시간들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어떤 방법으로 보충을 해야 망신스러운 낙제를 면할 수 있을까 고심하다가 ‘4시간 정도 밖에 잘 수 없는 수면 시간을 더 줄여봐? 그러다 쓰러지면? 아니야! 나는 할 수 있어. 꼭 하고 말거야!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 이렇게 용기를 내봅니다.
  요즘은 새벽 일찍 나가 첫 지하철이 오기까지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대합실 한쪽 끝에서 오공법, 오기법을 연습해 보는데 연공법 또한 너무 재미있어서 한번씩 더 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인생의 수없이 많은 날들을 앞에 두고 있는데 너무 초조해 하지말고 물처럼 흐르며, 막히면 쉬어 가고 돌아가며 그래도 안되면 쉬었다가 다시 가더라도 나는 끝내 목적지까지 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동안 수고해주신 본원의 정사님과 법사님, 여러 사범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저희 12기를 이끌어 주시는 회장단 여러분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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